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자유실시기술의 항변

권리범위확인심판은 심판청구인이 그 청구에서 심판의 대상으로 삼은 확인대상발명이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는 객관적인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목적을 가진 절차이다(2012후4162 판결 참조). 따라서, 권리범위확인심판은 특허발명과 확인대상발명을 서로 비교하여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특허발명을 공지기술과 비교하여 진보성이 없다는 것이 명확할 때에 특허발명의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2후4162 전원합의체 판결은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반면에 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판결은 특허권침해금지 청구소송에서 특허발명이 진보성이 부정되어 무효로 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 특허권에 기초한 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 등의 청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한편, 대법원 1997. 11. 11. 선고 96후1750 판결은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확인대상발명이 공지기술만으로 이루어진 경우, 확인대상발명은 특허발명에 관계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느 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먼저 특허발명의 특허청구범위를 기준으로 그 권리범위를 확정하여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이를 확정함에 있어서는 공지공용의 기술은 그것이 신규의 기술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면 권리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특허발명과 이에 대비되는 (가)호 발명이 동일유사한 발명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양 발명 중 공지 부분이 포함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한한다 할 것이고(대법원 199. 2. 25. 선고 91후1649 판결, 1996. 11. 26. 선고 95후1777 판결 등 참조), 따라서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가)호 발명이 공지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특허발명과의 동일유사여부를 판단할 대상조차 가지지 않게 되어 그 (가)호 발명은 특허발명의 권리범위 여하 및 특허발명과의 유사 여부에 관계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게 된다”라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 이후에 대법원은 “어느 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특허발명과 대비되는 발명이 공지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거나 그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자가 공지기술로부터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는 경우에는 특허발명과 대비할 필요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게 된다”라고 간략하게 설시하였다(99후710 판결, 2002다60610 판결, 2009후832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확인대상발명이 공지기술과 동일하거나 공지기술로부터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어 자유실시기술에 해당한다는 항변이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당사자에게 유력한 수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확인대상발명이 자유실시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확인대상발명의 구성을 대비되는 특허발명과 대응되는 구성으로 한정하여 파악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심판청구인이 특정한 확인대상발명의 구성 전체를 가지고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어 왔었다.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후64 판결은 이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판결을 내렸다. 즉, “권리범위확인 심판청구의 대상이 되는 확인대상고안이 공지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거나 그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공지기술로부터 극히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확인대상고안을 등록실용신안의 실용신안등록청구범위에 기재된 구성과 대응되는 구성으로 한정하여 파악할 것은 아니고, 심판청구인이 특정한 확인대상고안의 구성 전체를 가지고 그 해당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심판물은 청구인이 심판청구서에 기재한 심판청구취지에 의하여 곧바로 특정되는 것이고, 심판부에서 별도로 파악한 것에 의하여 심판물의 범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등의 이유에 근거하여 위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고 한다(지식재산21, 2008년 10월, 한동수, “확인대상고안의 기술구성을 파악하는 방법” 참조).

위 대법원 판결이 이론적으로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당사자는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는 특허발명의 진보성 흠결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2012후4162 판결 참조), 무효심판을 청구하여 특허발명을 무효로 하지 않으면,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게 된다는 점에서 실무적 어려움이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특허발명이 A,B 및 C를 포함하는 제품 P를 청구하는 것이고, 확인대상발명은 A, B, C 및 D를 포함하는 제품 P’이며, 특허발명의 출원일 전에 A, B 및 C를 포함하는 제품 P가 공지된 경우를 상정하자. 이 경우, 확인대상발명 P’는 구성요소 D를 더 포함하기 때문에 공지기술로부터 용이하게 발명할 수 없어 자유기술에 해당하지 않게 되고, 구성요소 A, B 및 C를 포함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한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확인대상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당사자는 권리범위확인심판 자체에서는 더 이상 유력한 주장을 할 수 없게 되고, 무효심판을 청구하여 특허발명이 무효가 되게 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권리범위확인심판만으로는 분쟁이 완전히 해결될 수 없게 된다.

한편, 권리범위확인심판의 실무적 측면에서,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하는 청구인은 확인대상발명을 특허발명과 서로 대비할 수 있을 만큼만 구체적으로 특정함으로써(2003후656 판결, 93후381 판결 등 참조) 확인대상발명이 자유실시기술에 해당하게 하도록 심판청구서를 작성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여야 하겠다. 구체적으로 위 예에서 확인대상발명을 A, B 및 C를 포함하는 제품 P’로 설명하는 것이 특허발명의 구성요건에 대비하여 그 차이점을 판단함에 필요한 정도에 해당한다면 확인대상발명의 특정에는 문제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확인대상발명은 공지기술과 동일하여 자유실시기술에 해당하게 된다.
이러한 실무적 조작이 가능하다면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하는 청구인에게 유리할 것이지만, 확인대상발명의 그러한 특정만으로는 확인대상발명의 작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확인대상발명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판청구가 각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체적 사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실무적 감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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