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후3284 판결: 특허 진보성 판단기준

서론: 진보성 판단의 패러다임 전환

대법원 2007년 9월 6일 선고 2005후3284 판결은 대한민국 특허법상, 특히 복수의 구성요소를 결합한 ‘결합발명’의 진보성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한 기념비적인 판결입니다. 이 판결 이전에는 결합발명의 진보성을 판단할 때 ‘구성의 곤란성’이나 ‘현저한 상승효과’와 같은 다소 경직된 잣대를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후3284 판결은 개별 구성요소의 단순한 합이 아닌 ‘유기적 결합체’로서의 발명 전체를 평가하고, 선행기술을 결합하게 된 ‘동기’를 체계적으로 심리하도록 하는 현대적 법리의 초석을 마련함으로써, 진보성 판단에 있어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법리의 탄생: 사건의 배경과 핵심 쟁점

이 사건은 반도체 기술 기업 폼팩터(FormFactor, Inc.)의 ‘프로브 카드 조립체’ 특허에 대해 경쟁사인 파이컴이 무효 심판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분쟁이 된 발명은 반도체 웨이퍼 테스트 시 발생하는 평면도(planarity)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1) 지지기층의 배향을 조절하여 ‘전체적 평면도’를 확보하는 공지 기술과 (2) 개별 프로브가 유연하게 움직여 ‘국부적 평면도’를 보상하는 공지 기술을 결합한 것이었습니다.

하급심인 특허법원은 이 두 기술이 각각 선행기술에 공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통상의 기술자가 이를 결합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보아 진보성을 부정했습니다. 그 근거로 ▲동일 기술 분야의 ‘기본적인 과제’ 해결을 위한 시도라는 점, ▲두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개념을 시사하는 다른 선행기술이 존재한다는 점, ▲결합으로 인한 효과가 각 구성요소 효과의 예측 가능한 합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특허법원의 논리를 그대로 확정하면서, 이를 대한민국 특허 실무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법리로 격상시켰습니다.

2005후3284 법리의 핵심: 이원적 판단 구조

이 판결이 확립한 법리는 크게 두 가지 원칙으로 구성됩니다.

발명의 ‘유기적 전체’로서의 파악: 진보성 판단의 대상은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전체로서의 기술사상”이며, 단순히 구성요소를 분해하여 각각이 공지되었는지 따지는 ‘분해 및 대비’ 방식은 금지됩니다. 대신 “특유의 과제 해결원리에 기초하여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로서의 구성의 곤란성”과 그로 인한 “특유한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선행기술 결합 동기에 대한 ‘이원적(Two-Pronged)’ 기준: 진보성을 부정하기 위해 복수의 선행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다음 두 기준 중 하나라도 충족될 때 허용됩니다.

기준 1 (명시적 동기): 선행기술 문헌 자체에 다른 기술과 “조합 또는 결합하면 당해 특허발명에 이를 수 있다는 암시·동기 등”이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는 미국 특허 실무의 TSM(Teaching, Suggestion, Motivation) 테스트와 유사합니다.

기준 2 (암묵적 동기): 명시적인 동기가 없더라도, 출원 당시의 “기술수준, 기술상식, 해당 기술분야의 기본적 과제, 발전경향, 해당 업계의 요구” 등 기술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상의 기술자가 용이하게 그 결합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입니다. 이 유연한 기준은 경직된 TSM 테스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법리적 맥락과 국제적 위상

2005후3284 법리는 진보성 판단 시 발명의 내용을 미리 알고 평가하는 ‘사후적 고찰’을 금지한 2006후138 판결과 함께 대한민국 진보성 판단의 양대 기둥을 이룹니다. 2006후138 판결이 ‘해서는 안 될 것’을 규정한다면, 2005후3284 판결은 ‘해야 할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특히 이 판결의 이원적 기준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2007년 KSR v. Teleflex 판결을 통해 경직된 TSM 테스트를 완화하고 유연한 접근법을 채택한 것과 그 방향을 같이합니다. 또한 ‘기술분야의 기본적 과제’를 고려하는 점은 유럽특허청(EPO)의 ‘문제-해결 접근법(Problem-Solution Approach)’과도 유사하며, 일본의 심사기준과도 공통점이 많아, 대한민국 특허법의 국제적 정합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특허 실무에 미친 영향과 지속적인 논쟁

이 판결의 원칙들은 특허청의 ‘특허·실용신안 심사기준’에 그대로 반영되어, 심사관들이 진보성 거절 이유를 설시할 때 결합의 동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특허 대리인들은 명세서 작성 단계부터 구성요소 간의 유기적 상호작용과 예측 불가능한 효과를 강조하여 선제적으로 진보성을 주장하게 되었고, 소송 전략 역시 결합의 동기 유무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한편, 판결은 ‘구성의 곤란성’과 ‘효과의 현저성’ 사이의 관계라는 법리적 논쟁을 남겼습니다. 구성의 결합이 쉬워 보여도 효과가 매우 뛰어나면 진보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독립 요건설), 아니면 효과는 구성의 곤란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한지(이차적 고려설)에 대한 논의입니다. 후속 판례들은 대체로 ‘이차적 고려설’에 따라 구성의 곤란성 평가를 우선하되, 효과의 현저성을 그 판단의 유력한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화학·의약 분야와 같이 예측이 어려운 기술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현저한 효과’가 진보성 인정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결론: 더 높은 수준의 특허 시스템을 향하여

결론적으로 2005후3284 판결은 결합발명의 진보성 판단을 ‘자명한가’라는 모호한 질문에서, ‘왜 그 결합이 자명하지 않은가’에 대한 구조화되고 증거에 기반한 분석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발명을 유기적 전체로 보고, 결합의 동기를 명시적·암묵적 차원에서 다각도로 검토하도록 한 이 법리는 심사 및 소송 실무에 더 높은 수준의 논리적 엄밀함을 요구함으로써 대한민국 특허 시스템의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핵심적인 사법적 이정표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