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형상으로 된 입체상표의 등록적격 및 유사판단

상표법은 상표란 상품을 생산, 가공 또는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상표사용자의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는 상표의 기능을 상품출처표시기능이라고 부르며, 그러한 기능을 발휘하는 상표의 능력을 자타상품 식별력이라고 부르고, 간단하게 식별력이라고 부릅니다. 즉, 상표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식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표법은 또한 기호, 문자, 도형, 입체적 형상 또는 이들을 결합하거나 이들에 색체를 결합한 것을 상표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입체적 형상이 포함된 상표를 입체상표라고 부릅니다. 입체상표는 크게 상품 그 자체의 형상(또는 상품 포장의 형상) 및 상품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입체형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품 그 자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입체형상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KFC의 할아버지 형상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입체상표가 아니고 입체서비스표에 해당하지만 말입니다. 입체적 형상을 상품 또는 상품의 용기, 포장 등에 부착하여 판매하는 경우, 그러한 입체형상이 자타상품 식별을 위하여 사용되었고 또한 수요자도 그렇게 인식하였다면 그러한 입체형상은 입체상표에 해당할 것입니다.

반면에, 상품 그 자체의 형상 또는 상품 용기 또는 포장의 형상은 일반적으로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는 인식되지 않으며, 단지 상품의 기능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요소이거나 상품에 장식적 미를 제공하는 상품 디자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상품 그 자체의 형상은 본질적으로는 자타상품 식별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법원은 Walmart Stores, Inc. v. Samara Brothers, Inc. 사건에서 상품 자체의 디자인, 형상은 본질적으로 식별력이 없다라고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법원은 소비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상품 디자인의 특징은 색채와 마찬가지로 출처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상품 자체를 더욱 유용하게 또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하면서 상품의 디자인이 식별력이 있다고 주장할 경우에는 2차적 의미를 입증한 경우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2차적 의미라 함은 그러한 입체상표는 본질적으로는 상품출처표시기능, 즉 식별력을 가지지 않았으나 사용함에 의하여 수요자에게 특정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인식된 경우, 즉 사용에 의하여 식별력을 획득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사하게, 우리나라 상표법도 상품 그 자체의 형상(또는 포장의 형상)은 자타상품 식별력이 없기 때문에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표법 제6조제1항은 제6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는 상표, 즉 ‘그 상품의 산지, 품질, 원재료, 효능, 용도, 수량, 형상(포장의 형상을 포함한다), 가격, 생산방법, 가공방법, 사용방법 또는 시기를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는 상표심사기준에 의하면, 상표의 외관, 칭호, 관념을 통해 ‘성질표시’로 직감할 수 있도록 표시된 경우를 말하며, 일반인의 특별한 주의를 끌 정도로 독특한 서체, 도안 및 구성으로 표시되어 있어 문자의 의미를 직감할 수 없는 정도로 도안화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표심사기준은 또한 지정상품과의 관계에서 산지 등을 직접적으로 표시하여 상품의 출처표시로 인식될 수 없거나, 특정인에게 독점시킬 경우 당 업계의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본호를 적용하며, 상품의 성질을 간접적, 암시적으로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본호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상표심사기준은 입체상표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상품과 관련있는 입체적 형상은 상품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시키거나 또는 심미감을 일으켜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돋우기 위한 의도 등으로 창안되는 것이며, 자타상품을 식별하기 위한 기능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입체적 형상의 식별력은 이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상품 그 자체의 형상(또는 포장의 형상)은 그 자체가 ‘성질표시’로 직감할 수 있게 표시된 경우에 해당하고, 상품의 성질을 간접적, 암시적으로 표시하는 것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상품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거나 상품 디자인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수요자는 상품의 형상으로부터 상품출처를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상품의 형상은 본질적으로 자타상품 식별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품의 형상이라도 오랫동안 사용함에 의하여 수요자에게 특정인의 상품으로 각인된 경우에는 2차적 의미에서 식별력을 획득하였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경우에는 상표등록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상표법 제6조제2항은 “제1항제3호부터 제6호까지에 해당하는 상표라도 제9조에 따른 상표등록출원 전부터 그 상표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 간에 특정인의 상품에 관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에는 그 상표를 사용한 상품에 한정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라고 규정합니다.

입체상표가 사용에 의하여 식별력을 획득한 대표적인 예는 코카콜라 병 형상을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최근에 판단된 예로는 화이자의 성기능장애 치료용 약제(비아그라)의 형상을 들 수 있습니다. 화이자의 비아그라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면서 한미약품은 동일한 기능을 가지는 약제를 ‘팔팔정’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화이자는 자신의 입체상표에 대한 권리를 한미약품의 ‘팔팔정’이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2015. 10. 15. 선고 대법원 2013다84568 판결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먼저 화이자의 성기능장애 치료용 약제(이하, ‘비아그라’라 함)의 형상이 상표법 제6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상품 등의 입체적 형상으로 된 상표의 경우, 그 입체적 형상이 당해 지정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에서 그 상품 등의 통상적, 기본적인 형태에 해당하거나, 거래분야에서 채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형한 형태에 불과하거나 또는 당해 상품 유형에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장식적 형태를 단순히 도입하여 이루어진 형상으로서 그 상품의 장식 또는 외장으로만 인식되는 데에 그칠 뿐, 이례적이거나 독특한 형태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등으로 수요자가 상품의 출처 표시로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위 규정의 ‘상품 등의 형상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일반적인 기준을 언급한 후 비아그라의 형상은 마름모 도형의 입체적 형상과 푸른색 계열의 색채가 결합된 것으로서 알약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여 상표법 제6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고 식별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의 위 판단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은 상품의 형상이 이례적이거나 독특한 형태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식별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여부를 모호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기준 자체만으로 본다면 상품의 형상이 이례적이거나 독특한 형태상의 특징을 가진다면 수요자가 상품의 출처표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즉 본질적으로 자타상품 식별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품의 형상은 사용에 의하여 식별력을 획득하지 않는다면 본질적으로는 식별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단과는 배치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상품의 형상이 이례적이거나 독특한 형태상의 특징을 가지는 경우에 대한 것은 아니므로, 그러한 이례적인 형상을 가지는 경우 상품의 형상이 본질적으로 식별력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정립되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대법원은 다음으로, 비아그라의 형상 자체는 사용에 의하여 식별력을 얻었기 때문에 상표로서 인정할 수 있고, 또한 비아그라의 형상은 그러한 형상 이외에도 성기능장애 치료용 약제의 형상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러한 약제의 형상이 약제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상표법 제7조제1항제13호에 규정된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의 기능을 확보하는데 불가결한 입체적 형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비아그라의 형상은 등록상표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편, 대법원은 한미약품의 ‘팔팔정’ 제품의 형상이 비아그라의 형상에 관한 상표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두 제품의 형상은 모두 색채가 푸른색이고 마름모 도형의 입체적 형상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그 형태에 차이점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전문의약품으로서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사에 의하여 투약되고 있는 피고 제품들은 그 포장과 제품 자체에 기재된 명칭과 피고의 문자상표 및 상호 등에 의하여 이 사건 등록상표와 구별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등록상표와 피고 제품들의 형태는 수요자에게 오인,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서로 동일 또는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상기한 내용에 의하면, 대법원 판결은 화이자의 등록상표에 대하여 등록적격성을 인정하면서도 한미약품의 ‘팔팔정’ 제품은 그러한 입체상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함으로써 균형잡힌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다만, 입체상표의 등록적격성을 인정하면서도 한미약품 ‘팔팔정’ 제품의 형상 그 자체와 화이자의 등록상표(입체상표)만을 비교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다른 요소들(‘팔팔정’ 문자상표 및 ‘한미약품’ 상호 등)을 더욱 크게 평가하여 수요자의 오인,혼동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점에서, 입체상표의 독자적 의미가 무엇인지 찾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참고한다면, 등록된 입체상표에 대하여 권리침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형상을 완전히 동일하게 모방하지 않고 약간 다르게 구성하고, 또한 등록된 입체상표만을 실제 제품에 사용하는 것은 상정할 수 없고 문자상표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그렇게 표시된 문자상표와 다른 문자상표를 침해제품에 표시하기만 하면 입체상표에 대한 권리침해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실제로 입체상표의 권리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입체상표에 대한 이러한 의문 이외에도, 입체상표와 문자상표가 결합된 결합상표가 입체상표로 분류하여 상표등록출원을 하는 경우 그러한 상표는 입체적 형상 자체에는 식별력이 없지만, 문자상표에 의하여 식별력을 가지고, 그래서 전체적인 결합상표도 식별력을 가지는 것이 되어 상표등록이 됩니다. 이와 같은 등록은 입체상표에 대하여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상표는 입체상표로서 등록되었기 때문에 상품의 입체적 형상 그 자체가 상표로서 등록된 것처럼 오인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상표권자가 이러한 오인을 악용하여 타인이 등록상표의 입체적 형상과 유사한 상품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상표권 침해로 제소하거나 주장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상표권자 자신이 그렇게 잘못 인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입체상표와 문자상표가 결합된 결합상표에 대해서는 권리해석에 더욱 신중을 기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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