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제도는 기술혁신을 장려하기 위하여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법적 효력과 권리의 경계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특허청구범위(claims)’입니다. 청구범위는 특허권자가 보호받고자 하는 발명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 문서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특허권의 실질적 가치와 분쟁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청구범위 해석은 발명자에게는 정당한 보호를 제공하고, 제3자에게는 자유로운 기술 실시의 영역을 명확히 하여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합니다. 즉, 청구범위 해석은 그렇게 상충하는 가치를 조화시키는 고도의 지적 작업입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통상의 기술자)의 객관적 시각에서, 명세서와 도면 등 내적 증거를 우선하여 청구범위를 해석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1. 문언적 권리범위의 확정: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과 그 한계
특허 침해 판단의 출발점이자 가장 엄격한 기준은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s Rule)’입니다. 이 원칙은 침해 의심 제품이나 방법이 특허청구범위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문자 그대로 전부 포함하여 실시하는 경우에만 문언적 침해(Literal Infringement)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침해품이 특허발명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도 구비하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문언침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특허발명의 모든 구성요소를 포함하면서 추가적인 요소를 부가한 경우에는 침해에 해당합니다.
이 원칙의 법적 근거는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특허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진다”고 명시한 특허법 제97조입니다. 이는 권리범위의 경계를 청구항의 문언으로 명확히 한정하는 ‘주변한정주의(Peripheral Claiming)’를 채택한 것으로, 법적 안정성과 제3자의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입법 태도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청구범위의 용어는 그 자체만으로 기술적 의미가 불명확할 수 있습니다. 이에, 법원은 발명의 설명이나 도면을 ‘참작’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청구범위의 기재만으로 기술적 구성을 알 수 없거나, 그 기술적 범위를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명세서의 다른 기재를 통해 보충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용어의 의미를 밝히기 위한 ‘해석’의 도구일 뿐이고, 발명의 설명에 기재된 특정 실시예를 근거로 청구범위를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확장’하여 해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특히, 청구항에는 포괄적으로 기재된 구성을 명세서의 특정 실시예만으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실시예 한정의 오류’는 법원이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대표적인 해석 오류입니다.
2. 실질적 권리범위의 확장: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침해자가 특허의 핵심 기술사상을 그대로 모방하면서도 구성요소의 일부를 비본질적이고 사소하게 변경하여 손쉽게 침해 책임을 회피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 논리의 허점을 보완하고 발명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판례법상 발전된 법리가 바로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입니다. 균등론은 침해품이 청구항의 문언과 문자 그대로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까지 특허권의 효력을 확장하는 이론입니다.
대법원은 ‘항균제 제조방법 사건(97후2200)’ 판결을 통해 균등침해가 성립하기 위한 5가지 요건을 제시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특허 소송 실무의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균등침해가 성립하려면 3가지 적극적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동시에 2가지 소극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적극적 요건 1] 과제해결원리의 동일성: 특허발명과 침해품의 과제해결원리가 동일해야 합니다. ‘과제해결원리’란 선행기술과 비교하여 특허발명에 특유한 해결수단이 기초하고 있는 ‘기술사상의 핵심’을 의미하며, 이를 판단할 때는 청구범위의 일부 구성을 형식적으로 추출할 것이 아니라 명세서 전체와 출원 당시 공지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특허발명의 실질적인 기술적 기여가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합니다.
[적극적 요건 2] 작용효과의 실질적 동일성: 변경된 구성이 특허발명의 구성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작용효과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는 선행기술이 해결하지 못했던 기술적 과제를 침해품 역시 해결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적극적 요건 3] 치환의 용이성(자명성): 특허발명의 구성을 침해품의 구성으로 치환하는 것이 통상의 기술자에게 용이해야 합니다. 여기서의 용이성은 진보성 판단의 ‘용이성’보다 더 좁은 개념으로, 거의 ‘자명한’ 수준의 변경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요건의 판단 시점이 특허 출원 시가 아니라 ‘침해 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출원 이후에 공지된 기술이라도 침해 시점에 통상의 기술자에게 알려진 기술이라면 치환 용이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소극적 요건 1] 자유실시기술의 항변: 침해품이 특허 출원 당시에 이미 공지되었거나, 그로부터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기술, 즉 ‘자유실시기술’에 해당해서는 안 됩니다.
[소극적 요건 2] 출원경과 금반언의 원칙: 침해품의 변경된 구성이 특허 출원 과정에서 특허권자에 의해 의식적으로 권리범위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3. 실질적 권리범위의 제한: 출원경과 금반언의 원칙
균등론이 특허권자 보호를 위한 ‘창’이라면, ‘출원경과 금반언의 원칙(Prosecution History Estoppel)’은 제3자의 신뢰 보호를 위한 ‘방패’입니다. 이 원칙은 특허 출원인이 심사 또는 심판 과정에서 특정 내용을 권리범위에서 포기하거나 제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면, 나중에 그와 모순되게 그 부분까지 자신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리입니다. 이는 제3자가 공개된 출원경과 서류를 신뢰하고 자신의 행동 범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금반언 원칙이 적용되려면 출원인이 특정 구성을 ‘의식적으로 제외’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단순히 청구범위를 감축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되며, 출원 과정에 나타난 보정서, 의견서, 심사관의 견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출원인이 선행기술 회피 등을 위해 특정 구성을 자신의 권리범위에서 명확히 배제하려는 ‘객관적인 의사’가 명백하게 확인되어야만 금반언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출원 시의 보정뿐만 아니라, 특허 등록 이후 무효심판에 대응하기 위해 청구범위를 감축하는 ‘정정’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4. 특정 청구항 유형별 해석 및 신기술 동향
이러한 일반 원칙 외에도 특정 유형의 청구항에 대한 해석론이 발전해왔습니다. 제조방법으로 물건을 한정하는 ‘PBP(Product-by-Process) 청구항’은 그 권리범위가 제조방법이 아닌 최종 생산된 ‘물건’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물건설’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확립되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 제조되었더라도 PBP 청구항으로 특정되는 물건과 구조 및 성질이 동일하다면 특허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 구조 대신 수행하는 ‘기능’으로 기재된 ‘기능식 청구항(Means-Plus-Function Claim)’은 한국 특허법에 명문 규정이 없으나, 판례는 실질적으로 명세서에 기재된 ‘상응하는 구조 및 그 균등물’의 범위로 권리범위를 제한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법리와 유사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한편, 소프트웨어 및 AI 발명과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새로운 해석 과제를 제기합니다. 이러한 발명들은 추상적 아이디어로 취급되어 특허 대상이 되지 않을 위험이 있으므로, 소프트웨어에 의한 정보처리가 특정 하드웨어와 결합하여 구체적인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고 측정 가능한 기술적 효과를 낸다는 점을 명확히 입증해야 합니다. AI 발명의 경우, 학습 데이터, 신경망 구조 등 AI 모델의 핵심 요소를 어떻게 특정하고 그 균등 범위를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5. 결론 및 전망
결론적으로, 특허 청구범위 해석은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에 따른 문언적 해석에서 출발하여, 발명자 보호를 위해 ‘균등론’으로 권리범위를 실질적으로 확장하고, 다시 제3자의 신뢰 보호를 위해 ‘출원경과 금반언의 원칙’으로 그 확장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다층적이고 유기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법원은 이 세 가지 핵심 법리를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특허권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와 제3자의 예측 가능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술이 고도로 융복합화되고 글로벌 특허 분쟁이 증가함에 따라, 청구범위 해석론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국제적 정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