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허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실시가능요건’에 대해 법리적 토대, 기술 분야별 적용, 그리고 실무 전략을 종합적으로 설명합니다. 특허 제도는 발명가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가로 그 기술을 사회에 완전히 공개하도록 하는 사회적 계약에 기반하며, 실시가능요건은 이 계약을 이행하는 핵심 법적 장치입니다. 이는 특허 명세서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가 과도한 실험이나 특수한 지식 없이 발명을 쉽게 재현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작성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제1부: 법리적 토대와 해석 주요국 법규 비교: 한국, 미국, 유럽은 ‘통상의 기술자에 의한 용이한 실시’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지만, 법적 표현과 해석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특허법 제42조 제3항 제1호): 명세서가 제3자에게 기술을 전달하는 ‘기술 문헌’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재현 가능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습니다. 미국 (35 U.S.C. § 112(a)): 발명 공개를 독점권에 대한 ‘대가(quid pro quo)’로 명확히 하며, 발명을 ‘만들고 사용하는 방법’의 구체성을 요구합니다. 특히 실시가능요건과 별개로, 출원인이 발명을 소유했음을 증명하는 ‘서면 기재 요건’을 요구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유럽 (EPC 제83조): ‘공개의 충분성’을 요구하며,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을 재현하는 데 ‘과도한 부담(undue burden)’이 없어야 함을 핵심 기준으로 삼습니다. ‘통상의 기술자’의 법적 구성: 실시가능요건 판단의 기준점인 ‘통상의 기술자’는 해당 기술 분야의 평균적인 전문가를 상정한 법적 가상 인물입니다. ‘통상의 기술자’의 기술 수준 설정은 실시가능요건과 진보성 요건 사이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합니다. 기술 수준을 높게 설정하면 명세서 기재 부담은 줄지만 진보성 부정 위험이 커지고, 반대로 낮게 설정하면 진보성 인정에는 유리하지만 훨씬 상세한 기재가 요구되어 실시가능요건 위반 위험이 커집니다. 따라서 두 요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적 수준 설정이 필수적입니다. ‘과도한 실험’의 판단 기준: ‘용이한 실시’는 합리적 수준의 실험을 포함하며, 그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실험’이 요구될 때 실시가능요건 위반이 됩니다. 미국 판례에서 정립된…
이 글은 특허법상 특허 청구범위 작성의 핵심 원칙과 전략을 살펴봅니다. 특허의 권리 범위는 전적으로 청구범위에 의해 결정되므로, 청구범위 작성은 발명자의 권리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법률적, 전략적 행위입니다. 제1부: 청구범위의 법적 위상과 기본 원칙 특허 청구범위는 특허권자에게는 권리의 범위를 확정하는 '권리서'이자, 제3자에게는 자유 기술의 경계를 알려주는 '기술문헌'으로서의 이중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두 기능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청구범위 작성의 핵심입니다. 모든 작성 원칙의 법적 근거는 특허법 제42조에 있으며, 특히 뒷받침 요건(제42조 제4항 제1호)과 명확성 및 간결성 원칙(제42조 제4항 제2호)이 가장 중요합니다. 뒷받침 요건: 청구항에 기재된 발명은 '발명의 설명'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는 출원인이 공개한 기술 사상의 범위를 넘어 과도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판례는 청구항의 구성요소가 발명의 설명에 문자적으로 기재되었는지(구성요소 대응설)와 더불어, 발명의 설명에 나타난 과제 해결의 본질이 청구항에 반영되었는지(해결과제 중심설)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명세서 작성 시 발명의 핵심 과제와 해결 원리를 청구항의 범위와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확성 및 간결성 원칙: 제3자가 권리의 경계를 명확히 예측할 수 있도록 모호함 없이 간결하게 작성되어야 합니다. '약', '적절한'과 같은 불명확한 용어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발명의 설명에서 그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면 사용이 가능합니다. 발명의 카테고리나 구성요소 간 결합관계가 불분명한 경우 명확성 원칙에 위배됩니다. 발명의 단일성: '하나의 총괄적 발명의 개념'을 형성하는 발명군은 하나의 출원으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발명들은 선행기술 대비 개선된 공통의 '특별한 기술적 특징'을 공유해야 합니다. 단일성 위반 지적은 종종 발명의 핵심 특징이 신규성·진보성이 없다는 심사관의 잠정적 판단을 의미하므로, 실체적 거절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제2부: 청구항의 구조적 및 고급 작성 전략 다항제의 전략적 활용: 독립항과 종속항을 조합하여 권리를 계층적으로 보호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독립항: 발명의 필수 구성요소만으로 가장 넓은 권리범위를 설정합니다. 종속항: 독립항을…
이 글은 특허 보호의 근본 전제인 '발명의 완성'에 대한 특허법의 법리에 관한 것입니다. 1. 미완성 발명의 법적 위상과 판단 체계 대한민국 특허법에서 발명의 '완성'은 특허성의 첫 관문입니다. 단순 아이디어가 아닌,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성과만이 특허 보호 대상이 됩니다. 한국의 판례와 실무는 미완성 발명을 미국이나 유럽처럼 명세서 기재요건의 문제(실시가능요건 등)로 보지 않고, '발명의 성립성' 자체를 부정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합니다. 즉, 미완성된 아이디어는 특허법 제2조 제1호의 '발명'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제29조 제1항 본문이 규정하는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발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됩니다. 이는 미완성 발명의 하자가 추후 보정으로 치유될 수 없고, 선출원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중대한 법적 효과를 낳습니다. 이는 '설명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로 취급됨을 의미합니다. 특허 심사는 (1) 비-발명(자연법칙 자체 등) 여부, (2) 미완성 발명 여부, (3) 신규성·진보성 등의 3단계 계층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2. 발명 완성 판단 기준의 변화: 2017후523 판결의 영향 과거 법원은 발명의 완성을 "통상의 기술자가 반복 실시하여 목적하는 기술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판단했습니다. 이는 발명의 재현성과 효과의 확실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17후523 판결은 이 기준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대법원은 발명의 완성을 "통상의 기술자가 반복 실시할 수 있고, 발명이 목적하는 기술적 효과의 달성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객관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결은 효과를 완벽히 '입증'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출원 당시 기술 수준에서 효과 발생을 '예상'할 수 있으면 된다는 방향으로 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초기 단계의 기술 혁신을 장려하는 취지이지만, '예상'이라는 주관적 요소의 개입으로 법적 분쟁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3. 미완성 발명과 명세서 기재불비의 핵심적 구별 두 개념은 법적 성격과 효과가 판이하여 구별이 매우…
서론: 명세서의 이중적 역할과 중요성 특허 제도는 발명 기술을 사회에 공개하는 대가로 독점권을 부여하는 사회적 계약이며, 그 중심에는 '명세서'가 있다. 명세서는 제3자가 기술을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공개서'이자, 법적 보호 범위를 한정하는 '권리서'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 두 역할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특허법 제42조에 규정된 특허 명세서 기재요건 의 본질이다. 기재요건 미비는 출원 단계의 거절이유가 될 뿐만 아니라, 등록 후에도 가장 빈번한 특허 무효 사유로 작용하므로, 강력하고 안정적인 특허권 확보를 위해 기재요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필수적이다. 제1부: 특허법 제42조의 법리적 토대 1. 명세서의 구성: 발명의 설명과 청구범위 명세서는 '발명의 설명'과 '청구범위'로 구성된다. '발명의 설명'은 발명의 명칭, 도면 설명, 상세한 설명 등을 통해 기술적 사상을 담는 부분으로, 기술공개서의 기능을 한다. 반면, '청구범위'는 보호받고자 하는 권리의 범위를 특정하는 부분으로, 권리서의 기능을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청구범위가 반드시 발명의 설명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1호)이다. 공개하지 않은 기술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특허 제도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2. 발명의 설명 기재요건: 실시가능요건 (§42(3)) 특허법 제42조 제3항 제1호는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발명을 쉽게 실시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실시가능요건'으로, 기술 공개를 실질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핵심 규정이다. 판단의 주체는 '통상의 기술자'이며, 기준 시점은 '출원 시'이다. 대법원은 '쉽게 실시할 수 있는 정도'를 "통상의 기술자가 과도한 실험이나 특수한 지식 없이 명세서 기재만으로 발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는 정도"로 판시했다. 이는 최소한 실험실 수준에서 발명을 재현하고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약 발명에서는 동물실험 데이터만으로 인체 효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임상시험 데이터가 없어도 실시가능요건을 충족할 수…
I. 서론: 의약 용도발명의 법적 특수성과 판례의 역할 의약 용도발명은 특정 물질의 새로운 의약적 용도를 발견하는 것에 기반한 발명으로, 제약 산업 혁신의 핵심 동력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제1 의약 용도발명은 특정 물질의 최초 의약 용도를 발견한 것이며, 둘째, 제2 의약 용도발명은 이미 알려진 약물의 새로운 치료 효과(예: 다른 질병 치료)를 발견한 것으로, 대부분의 특허 분쟁은 이 영역에서 발생한다. 대한민국 특허법은 '발견'이 아닌 '창작'을 보호 대상으로 하므로, 물질의 속성을 단순히 발견하는 것은 특허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의약 용도발명은 '발견'을 '발명'으로 인정하는 독특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 이는 인간에 대한 수술, 치료 등 '의료행위'를 특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원칙을 우회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즉, '특정 질병 치료 방법'으로 보면 의료행위에 해당하므로, 우리 법원은 이를 '특정 용도를 내재적 속성으로 갖는 물의 발명(product invention)'으로 취급하는 논리를 채택했다. 이러한 논리는 의약 혁신을 보호하는 장치인 동시에, 법원이 특허 요건을 다른 분야보다 엄격하게 심사하는 근거가 된다. 의약품은 국민 보건과 직결되므로, 특허권자의 사적 이익과 공중의 의약품 접근성이라는 공익 간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한편으로는 진정한 혁신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 특허나 특허권의 부당한 연장(evergreening)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II. 핵심 특허 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 1. 명세서 기재 요건: 엄격한 완성도의 요구 대법원은 의약 용도발명의 명세서에 출원 시점에 약리 효과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실험 데이터(동물실험, 시험관 시험 등)가 기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는 발명이 단순한 추측이 아닌 완성된 기술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며, 출원 이후에 데이터를 보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특허청구범위는 '약리기전'이 아닌 구체적인 '약효'(치료 대상 질병명)로 명확히 특정해야 한다. 다만, 약리기전만으로 기재되었더라도 통상의 기술자가 그로부터 명확한 약효를 파악할 수 있다면 예외적으로 인정될…
서론: 용도발명의 중요성 용도발명이란 이미 알려진 물질에서 새로운 유용성을 발견하여 특정 목적, 즉 새로운 '용도'에 적용하는 기술적 사상의 창작을 의미합니다. 특히 제약 산업에서 용도발명은 '신약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의 핵심 전략으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의 부담을 줄이고 기존 약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실데나필이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재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제1장: 용도발명의 법적 본질과 핵심 쟁점 한국 특허법상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됩니다. 용도발명은 물질의 미지의 속성(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 수단(새로운 용도)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발견'이 아닌 '창작'으로 인정받습니다. 용도발명의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이를 '물건의 발명'으로 볼 것인지, '방법의 발명'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판례와 심사 실무는 의약용도발명을 '물건(物)의 발명'으로 취급하는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청구항은 "A를 유효성분으로 하는 B질병 치료용 약학 조성물"과 같이 특정 용도에 의해 한정되는 '물건'의 형태로 기재됩니다. 이는 용도발명을 '사용방법(method of use)' 발명, 즉 방법발명으로 보는 미국, 유럽 등 주요국과 구별되는 한국 특유의 제도로, 특허권자에게 더 넓고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는 기반이 됩니다. 이러한 독자적 입장은 과거 물질특허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제약 산업의 혁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현재까지 이어진 역사적 산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2장: 의약용도발명의 유형과 발전 의약용도발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제1 의약용도발명: 공지 물질에 대해 '최초'의 의약 용도를 발견한 발명으로, 선행기술이 없어 특허성이 높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2 의약용도발명: 이미 의약 용도가 알려진 물질에 대해 새로운 적응증(질병)을 발견한 발명입니다. 비아그라 사례처럼 신약 재창출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투여용법·용량 발명: 동일한 질병에 사용하더라도 투여 주기, 투여량 등을 새롭게 특정하여 예측하지 못한 현저한 효과(약효 증대, 부작용 감소 등)를 달성하는…
서론: 수치한정발명과 진보성 판단의 이중적 접근법 수치한정발명은 발명의 구성요소 일부를 수치 범위로 한정하는 발명으로서, 공지 기술을 특정 목적에 맞게 개량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이러한 발명의 진보성 판단은 특허법의 핵심 원칙, 즉 '비자명적 기술 도약의 보호'와 '통상적 최적화 과정의 배제'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적인 법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나는 선행기술과 과제 및 효과가 유사할 때 적용되는 엄격한 기준인 '임계적 의의(Critical Significance)' 법리이며, 다른 하나는 발명의 착상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적인 기준인 '구성의 곤란성(Difficulty of Constitution)' 법리입니다. 이 글은 이 두 가지 법리를 중심으로 대법원의 핵심 판례를 개략적으로 소개합니다. 1. 원칙적 기준: '임계적 의의' 법리 '임계적 의의' 법리는 수치한정발명이 선행기술과 비교하여 기술적 과제와 효과가 질적으로 동일(동질)하고 단지 수치 범위에서만 차이를 보일 때 적용되는 원칙적이고 엄격한 기준입니다. 자명성의 추정과 입증책임의 전환: 법원은 이러한 경우, 해당 수치 범위는 통상의 기술자가 통상적이고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쉽게 도출할 수 있는 자명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합니다. 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특허권자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됩니다. 특허권자는 자신이 선택한 수치 범위가 단순히 양적으로 개선된 효과를 넘어, 그 범위의 경계를 전후하여 예측 불가능하고 질적으로 다른 '현저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확립 판례 (대법원 2007후1299 판결 등): 대법원은 "한정된 수치 범위 내외에서 이질적이거나 현저한 효과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시하여 이 법리를 확립했습니다. 최근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2후10180 판결에서도 장세척 조성물의 특정 성분 함량 범위가 선행기술 대비 현저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보성을 부정하며, 이 법리가 여전히 엄격하게 적용됨을 재확인했습니다. 명세서를 통한 입증의무: '임계적 의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는 반드시 출원 시 제출된 명세서에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출원일 이후에 제출된 실험 자료는 원칙적으로…
서론: 수치한정발명의 전략적 가치와 법적 과제 수치한정발명은 제약, 재료 과학, 화학 등 기술 집약적 산업에서 기존 기술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획기적인 성능 개선을 이룰 때 그 혁신을 보호하는 핵심적인 법적 도구입니다. 이는 발명의 구성요소를 특정 수치나 범위로 한정하는 것으로, 후속 개량 발명을 보호하고 기업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수치한정발명은 특허받을 만한 창의적 발견과,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라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통상적인 최적화 사이의 경계를 구분해야 하는 본질적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정 수치범위에서 예측 불가능한 현저한 효과가 나타난다면 보호받아야 할 기술적 창작물이지만, 단순히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은 발명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복잡성은 대한민국,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특허청과 법원이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 더욱 심화되며, 이는 글로벌 기업에 심각한 도전 과제를 제기합니다. 제1부: 대한민국 특허법상 수치한정발명의 법적 프레임워크 한국 특허법에서 수치한정발명에 대한 체계적인 법리는 대법원 2001. 7. 13. 선고 99후1522 판결을 통해 확립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수치한정발명의 진보성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하며, 기존 기술의 정량적 개선 역시 특허 제도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공식화했습니다. 수치한정발명은 발명의 기술적 특징이 물리적 특성, 화학 조성물의 성분 함량, 공정 조건 등을 특정 수치 또는 수치범위로 한정하는 발명을 총칭합니다. 신규성 판단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출원발명의 수치범위가 선행기술에 개시된 더 넓은 수치범위 내에 완전히 포함되는 경우(예: 출원 10-20%, 선행 5-30%), 이는 선택발명 형태의 하위개념으로서 신규성이 인정됩니다. 반대로 출원발명이 선행기술의 좁은 범위를 포함하면 신규성이 부정됩니다. 가장 중요한 관문인 진보성 판단에서, 한국 법원은 오랜 기간 '임계적 의의'라는 전통적 법리를 적용해왔습니다. 이는 한정된 수치범위의 경계를 전후하여 효과의 질적 또는 양적 변화가 뚜렷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선행기술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효과가 발생하는 '이질적 효과'…
서론: 선택발명의 본질과 비자명성 미국 특허법에서 '선택발명'은 선행기술에 개시된 광범위한 속(genus)이나 범위에서 특정하고 우월한 속성을 지닌 종(species)이나 하위 범위를 선택하는 발명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발명의 특허성은 신규성(35 U.S.C. § 102)이 아닌 비자명성(35 U.S.C. § 103)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선행기술이 특정 종을 명시적으로 개시하지 않는 한 신규성은 인정되므로, 쟁점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POSITA) 관점에서 그 선택이 자명했는지 여부가 됩니다. 이 자명성 판단의 중심에는 세 가지 핵심 법리가 있습니다: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Obvious to Try): 그 선택을 시도해 볼 동기가 있었는가?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Reasonable Expectation of Success, RES): 그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는 합리적 가능성이 있었는가? 예상치 못한 결과 (Unexpected Results): 위 두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자명성 추정을 뒤집을 수 있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는가? 제1장: 자명성 판단의 기본 틀 미국 특허법 제103조는 발명이 이루어진 시점(AIA 개정 후에는 유효 출원일 이전)에 통상의 기술자에게 자명한 경우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 판단을 위한 객관적인 분석 틀은 1966년 Graham v. John Deere Co. 판결에서 확립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모든 자명성 분석의 근간을 이룹니다. Graham의 네 가지 요소: 선행기술의 범위와 내용: 관련된 모든 선행기술을 확정합니다. 선행기술과 청구된 발명의 차이점: 발명의 기술적 특징을 명확히 합니다. 관련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 수준(POSITA): 평균적 전문가의 지식 수준을 정의합니다. 비자명성의 객관적 증거 (2차적 고려사항): 상업적 성공,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필요, 타인의 실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예상치 못한 결과 등을 평가합니다. 이러한 2차적 고려사항은 사후적 고찰의 오류를 방지하는 중요한 안전장치이며, 일견 자명성(prima facie obviousness)이 성립된 후 별도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 전체의 일부로서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제2장: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과 KSR 혁명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법리는…
서론: 선택발명 진보성 판단의 패러다임 전환 2021년 4월 8일 선고된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은 대한민국 특허법, 특히 제약·바이오 분야 선택발명의 진보성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한 역사적 판결이다. 선택발명이란 선행기술에 넓게 개시된 상위개념으로부터 특정 하위개념을 선택하여 구성한 발명을 말한다. 과거 한국 법원은 이러한 선택발명의 진보성을 인정받기 위해 선행발명 대비 ‘질적으로 이질적이거나 양적으로 현저한 효과’를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왔다. 이로 인해 진정한 기술적 창작성이 있는 발명조차 특허 보호를 받기 어려웠고, 미국이나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특허법리와도 달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2019후10609 판결은 이러한 ‘현저한 효과’ 중심의 법리에서 벗어나, 발명을 완성하기까지의 ‘구성의 곤란성’을 진보성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격상시켰다. 즉, ‘그 발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이 판결은 단일 사건의 해결을 넘어, 한국 특허법의 국제적 정합성을 높이고 산업계에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평가된다. 사건의 경과: 아픽사반 특허 분쟁 이 판결의 대상이 된 사건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이 보유한 항응고제 ‘엘리퀴스’의 주성분인 ‘아픽사반’에 대한 물질특허(특허 제0908176호) 무효 소송이었다. 제네릭사들은 선행발명인 국제공개특허(WO00/39131)에 아픽사반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선행발명이 방대한 범위의 화합물을 포괄하는 마쿠쉬(Markush) 화학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 화학식으로부터 아픽사반이라는 단 하나의 특정 화합물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기술자가 66개의 가능한 기본 골격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시 여러 치환기를 방대한 목록에서 정확히 조합해야 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화합물의 수는 ‘수억 가지 이상’에 달했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은 당시의 지배적 법리에 따라 아픽사반이 선행발명에 비해 ‘현저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특허 무효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이 선행발명에 상위개념이 개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억 개의 화합물 중에서 아픽사반을 특정하는 것의 어려움, 즉 ‘구성의 곤란성’을 심리하지 않은 채 진보성을 부정한 것은…